김문숙 선생님 미수(米壽) 공연
<조택원·김문숙의 춤>
근현대춤문화 유산(遺産)의 보고(寶庫)
2015년 4월 2일 (목) 오후4시 / 8시 (1일 2회 공연)
국립극장 달오름
조택원·김문숙의 춤 공연개요
주최 김문숙 (사)국수호디딤무용단
주관 공연기획MCT
후원 대한민국예술원 (사)한국무용협회
관람료 VIP석 100,000원 R석 50,000원 S석 30,000원
예매처 국립극장 02-2280-4114 인터파크 1544-1555
공연문의 02-2263-4680 www.mctdance.co.kr
STAFF
원작안무 故조택원 김문숙
예술감독 및 재연안무 국수호
안무․지도 김충한 노해진
음악감독 강상구
구성작가 이송
의상 이호준
무대미술 박동우
조명디자인 이상봉
영상디자인 김세훈
무대감독 길창훈
분장 김종한
사진 한용훈
영상기록 지화충
홍보진행 한지원 장운영 배주은
1부 조택원의 춤
1. 소고무(小鼓舞) 출연_김충한
소고춤에 대한 기록은『춤의 선구자 조택원』(댄스포럼, p.106, p.133. 2006)에 살펴보면, 1944년 3월 23~24일 부민관에서 공연된 조택원무용단의 프로그램에서 2번째 작품으로 공연되었고, 1949년 2월 10일 미국 자연사박물관에서 공연 한 사진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1938년 소고춤 의상을 입고 있는 그림이 남아있어 그 이전에도 비슷한 춤을 춘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07년 국가기록원에 의해 1956년 일본 도쿄 오테마에(大手前)회관에서 공연한 장면을 담은 영상기록물을 발견했는데, 이 영상물에 소고춤이 담겨져 있다.
2. 만종(晩鐘) 출연_김형남 김호은
만종의 초연은 1935년 제2회 발표회를 부민관에서 가졌다.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cois Millet)의 <만종>을 테마로 창작한 2인무로 음악은 프레데리크 쇼팽(Frédéric Chopin)의 <야상곡(nocturne)>이다.
이 춤의 창작배경은 음악가 김생려로부터 시작된다. 김생려는 당시 조택원의 집 2층에 살고 있었는데, 몇 달 전 한국에서 독주회를 가진 그의 미국의 세계적인 바이올린리스트 엘만이 어레인지 한 쇼팽의 야상곡에 감명을 받고 밤낮으로 그 곡을 연습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조택원은 귀가 아프도록 그 곡을 들어야만 했다. 마침 그의 방에 밀레의 그림 <만종>이 걸려있었는데, 하루는 눈앞의 만종과 쇼팽의 야상곡이 하나가 되어 조택원의 머릿속에서 한 상념이 떠올랐다. 종소리를 들으면서 경건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그림 속의 부부가 별안간 쇼팽의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었다.
갑자기 떠오른 정연한 움직임에 대해 그는 “하루의 일과가 끝나려는 저녁나절이 되어 일손을 거두려 몸이 더욱 빨리 움직인다. 이때 멀리서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온다. 농부는 하늘의 계시를 받은 듯 일손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나는 그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김생려의 바이올린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마침내 그 비길 데 없는 평화와 고요와 비현세적인 경건함과 헤아릴 수 없는 자연의 신비가 모두 내 머리 속 무대 위에서 재현되었다”고 한다.
3. 가사호접(袈裟蝴蝶) 출연_국수호
작곡_김준영
<가사호접(袈裟胡蝶)>은 1933년 공회당에서 제1회 발표회 때 초연한 작품이다. 초연 당시의 제목은 <승무(僧舞)의 인상(印象)>으로 작곡은 김준영이다. 이 작품은 창작무용을 위해 처음으로 음악을 작곡한 것으로 조택원은 “오리지널 음악으로 다시 말해 작곡을 해가지고 창작무용을 한 것은 이것이 나로서도 처음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이었다.” 그는 또 이 작품에 대해 “전래의 승무를 내 나름대로 해석, 창안한 것으로 내 개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안무한 춤이었다.”고 전한다.
작품의 내용을 보면, 속세를 동경한 중이 심산유곡을 버리고 새벽녘에 사바세계로 내려온다. 한 걸음 또 한걸음........... 뚜벅 뚜벅 걸어온다. 그리하여 마침내 가사를 내동댕이친다. 여기서부터 음악은 굿거리로 변하고 중은 환희의 광란의 춤을 춘다. 놀다놀다 그는 지쳐서 쓰러진다. 쓰러져 생각한다. 옛 시절을 생각한다. 옛날에 의지하던 불교를 생각한다. 깊은 생각에 잠겨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다시 가사를 집어 가지고 산으로 가려고 해본다. 그러나 그는 이미 파계승으로 되돌아 갈 수도 없다.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도 갈 수 없다. 결국은 죽을 길 밖에 없는데 죽을 수도 없다. 마침내 그는 가사를 집어 던지고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이처럼 이 작품은 승려의 파계와 귀의 과정에서 겪는 고뇌와 희열의 감정을 한국 춤사위로 표현하고 있다. <승무의 인상>은 조택원과 친분이 두터웠던 시인 정지용(鄭芝鎔)에 의해 <가사호접(袈裟胡蝶)>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만종>과 <가사호접>은 조택원의 파리공연에서 성공을 가져다준 레퍼토리가 되었다. 현재 <가사호접>은 송범, 김문숙을 거쳐 국수호에 전수되고 있다.
4. 무용조곡(舞踊組曲) ·춘향전(春香傳) 출연 이몽룡_김재승 춘향_백아람
원작곡_ 문학준 / 재연안무_ 국수호 / 작곡_강상구
1940년 1월 일본 히비야 공회당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무용조곡 <춘향전>은 <춘향조곡>, <춘향전조곡> 등으로 불려지고 있다. 이 춤은 <방자표표(房子飄飄)>, <춘향난만(春香爛漫)>, <몽룡춘흥(夢龍春興)>, <광한정연(廣寒情緣)>, <옥중춘향(獄中春香)>, <재회장한(再會長恨)> 등 6개의 조곡으로 되어 있다.
작품음악은 영산회상, 진양, 중머리, 중중머리와 굿거리를 썼다. 조택원은 춘향전이 성공을 거둔 것은 이 음악에 있다고 생각 할 만큼 흥겹고 경쾌해 “그 멋이 핏속에 혼속에 젖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못 추는 춤”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작품의 창작배경에 대해 “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으로서의 전형을 묘사한 고전 춘향전이 영화화도 되고 창극으로 무대에서도 상연되지만 그것을 무용으로 표현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불만이었다.”고 한다. 작곡은 문학준이 했고, 초연의 춘향 역은 이시가키 쇼우지라는 발레리나가 맡았다. 이 작품은 수 백회에 걸쳐 추어졌으며, 조택원의 파트너는 무려 20명이나 바뀌었다고 한다.
한국 최초의 무용조곡이자 조택원의 최초의 극형식의 <춘향전조곡>은 ‘조택원’을 안무가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한 작품이다.
(※이번 재현안무는 1944년 3월23~24일 부민관에서 공연된 조택원 무용단의 공연 프로그램에 나와 있는 무용조곡 <춘향전>의 내용과 조택원의 신문연재 기사, 각종 사진자료, 김문숙의 증언 등을 토대로 한 것이다.)
[1장 방자표표(房子飄飄)]
<춘향전>의 남자 주인공인 몽룡의 하인 방자.
방자는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몽룡의 심부름을 하며, 춘향과 몽룡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2장 춘향난만(春香爛漫)]
<춘향전>의 주인공인 절세 미녀 춘향은 한가로이 그네를 타며 봄기운을 만끽한다. 춘향은 설레는 마음으로 무르익어가는 봄을 즐기기 위해 처음으로 광한루로 나간다.
[3장 몽룡춘흥(夢龍春興)]
남원부사의 아들인 몽룡은 수려한 용모의 풍류 청년이다. 하인 방자에 이끌려 광한루에 나가 아름다운 경치에 감동하여 시상을 떠올리며 시를 읊는다. 춤은 그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4장 광한정연(廣寒情緣)]
춘향과 몽룡은 광한루에서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어느새 사랑의 속삭임을 나누고 그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5장 옥중춘향(獄中春香)]
몽룡은 부친이 궁내직으로 영전되어 한양으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관 사또가 부임한다. 몽룡과 이별의 아픔도 가시기 전에 춘향은 신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하고 정절을 지킨다. 신관 사또는 춘향에게 앙심을 품고 감옥에 투옥시킨다. 옥중생활로 쇠약해진 춘향은 몽룡과 즐거웠던 광한루를 회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6장 재회장한(再會長恨)]
신관 사또는 자신의 생일에 춘향을 참형시키려고 한다. 신관 사또 앞에 끌려 나온 춘향은 죽을 각오를 하고 참형을 기다리고 있다. 이때 암행어사가 된 몽룡에 의해 목숨을 구하고 두 사람은 환희에 가득 차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2부 김문숙의 춤
1. 대궐(大闕) 출연_최정임
구중궁궐(九重宮闕) 내에서 한 임금만을 위해 평생을 바쳐야 하는 궁녀들의 애환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김천흥 선생님의 화관무를 바탕으로 안무, 궁중무적인 분위기를 최대한 표현하고자 음악은 세면도드리를 넣고, 복식이나 복색을 전통 궁중무 의상에 가깝게 제작하였다. 의상이나 음악은 초연작 보다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지만 춤의 형태는 처음발표 당시와 거의 변화가 없이 그대로 추어지고 있다.
(김문숙 제1회 개인발표회 1958년 9월 12일 시공간 초연 / 2007년 한국무용협회 명작무로 지정)
2. 수평선(水平線)-산조 출연_정혜진
수평선은 한 여인이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자신의 애잔한 삶을 생각하는 내용으로 가야금 산조에 맞춰 창작한 작품이다. 가야금의 명인 성금연의 산조가락이 춤과 음악적 선율이 아름답게 묘사되었다.
김문숙은 이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희노애락(喜怒哀樂)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안무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김문숙 제1회 개인발표회 1958년 9월 12일 시공간 초연)
3. 살풀이 출연_ 최원선
1960년대 말경부터 한영숙으로 <살풀이>를 배웠고, 한영숙의 권유로 김문숙은 1976년 미국 독립200주년기념 공연에서 처음 이 춤을 추게 되었다. 김문숙에게 <살풀이>를 가르친 한영숙은 승무를 추고 그에게 <살풀이>를 추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후 김문숙은 1970~80년대 해외공연 레퍼토리에 <살풀이>를 담당하게 되었고, 수많은 외국의 무대에서 이 춤을 추며 한국춤의 아름다움을 선사하게 된 것이다.
김문숙의 <살풀이>는 한영숙에게 배운 전통 <살풀이>를 그대로 추지 않고 재해석 해 살풀이 수건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대상화시켜 춤을 췄다고 한다.
4. 모란등기(牧丹燈記)
원안무 – 김문숙 / 재현안무 – 국수호 / 음악감독 – 강상구
출연 교생(남자주인공)_ 정준용 / 부여경(여자주인공)_ 이민주
금란(시녀)_김현진 / 노인_염상현 / 무당_서나영
마을사람들 (남자) 염상현 김상철 김유섭
(여자) 김현진 이세희 윤서희 서나영 홍수정
1958년 김문숙의 개인발표회에 초연한 작품으로 중국의 명대(明代) 구우(瞿佑)가 쓴 단편소설 <모란등기(牧丹燈記)>를 무용극으로 안무한 김문숙의 대표작이다.
모란등기는 중국의 정월대보름 원소절이라는 축제에 모란등을 앞세우고 구경을 하던 처녀와 동네 총각이 눈이 맞아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처녀는 귀신이었고, 결국 귀신과 사랑에 빠진 청년은 처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죽고 만다는 내용이다.
이것을 김문숙은 우리의 단오절로 배경을 바꾸고,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하고자 시도했다. 창호지 너머 해골의 모습을 그림자로 형상화시켜 불행한 결말을 암시토록 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남자 주인공이 관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그의 죽음을 손으로 표현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이 작품을 창작하게 된 배경은 우연히 유진오 박사 댁에 갔다가 일어로 된 중국의 야사를 보고 무용극으로 만들면 좋을 거 같아 나름대로 대본도 정리하고 안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문숙 제1회 개인발표회 1958년 9월 12일 시공간 초연)
[1장 단오놀이와 마을 사람들]
마을 사람들이 단오제를 지내는 모습이 보이고 저 멀리서 등을 든 시녀와 처녀가 등장한다. 마을 사람들 곁에 있던 잘생긴 총각 교생은 시녀 금련과 아가씨 부여경을 발견하고 점점 그들 가까이로 다가간다. 해가 지면서 사람들은 떠나고 교생과 부여경, 그리고 금련 만이 남게 된다.
[2장 만남과 사랑]
부여경에게 첫눈에 반한 교생은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 금새 싹튼 사랑은 금련의 안내로 교생의 집으로 이끌리듯 인도된다. 집으로 들어가 금련이 불을 밝히고 창문 너머로 두 사람의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그림자로 비춰진다.
[3장 교생과 해골 그림자]
그 때, 교생의 집 앞을 지나가던 이웃집 노인이 우연하게 창문에 비친 그림자를 보게 된다. 호기심에 창가로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하나는 사람의 그림자인데 다른 하나는 해골의 그림자였다. 너무 놀라 더 자세히 쳐다보니 교생이 해골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함께 그 광경을 본 이웃집 영감은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다음날 마을 사람들은 교생에게 어제 밤 이야기를 해준다. 사람들의 믿지 않은 교생은 집 앞을 서성이며 부여경을 기다린다. 부여경은 다시 교생을 유혹해 집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다시 해골 그림자와 놀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날이 밝아오자 교생은 기운 없이 집을 나오고, 마을 사람들이 어른들을 불러 의논을 한 다음 무당을 불러 교생의 집에 부적을 붙인다.
[4장 부여경의 한(恨)]
날이 어두워지자 금련과 부여경이 등을 들고 교생의 집을 찾아온다. 그러나 집에 부적이 붙어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사라진다. 교생은 사랑스런 부여경을 잊지 못해 집앞을 헤매이고 있는데, 때마침 금련과 부여경을 만나게 된다.
금련과 부여경은 교생을 숲속에 있는 바위 근처로 유인한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낡은 초췌한 무덤 같은 곳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라고 권한다. 이상한 기운을 알아챈 교생은 무릎을 꿇고 그곳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몸짓을 한다. 그러나 부여경이 교생에게 다가가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교생의 어깨를 누르며 그를 관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교생의 손이 마지막까지 들어가지 않자 부여경은 손을 살짝 누르고 교생의 마지막 손이 꺾이며 떨어지자 등을 들고 있던 금련은 아련한 미소를 짓고, 막이 내린다.

